경향신문-어른도 읽는 어린이책

손님(윤재인/느림보)

아기새의작은꿈 2018. 11. 17. 17:37

[어른도 읽는 어린이책]필리핀에 살게 된 한국 소녀…‘다문화 가정’ 이야기의 역발상


▲손님(윤재인 글·민소애 그림 | 느림보) 


    지난 가을, 한 기업에서 후원하는 다문화 자녀 양육지원 멘토링 사업에 멘토로 참여한 일이 있다. 자녀교육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 가족의 심리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일이다. 그때 나의 멘티는 필리핀 주부로,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으며 한국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다. 멘티의 집을 방문했다.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의 적색벽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 돗자리에 몇몇 아이들과 엄마들이 어울려 앉아 있었다. 엄마들 사이에서 멘티가 나를 반겨주었고, 골목길에 사는 다른 엄마들을 소개했다. 필리핀, 러시아, 몽골, 중국, 베트남 등 해외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골목에 다문화 가정이 모여 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돗자리 위에 놓인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손님>이라는 그림책이다. 책 한 권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날이었다. 표지를 보니 바나나의 강렬한 노란색과 파인애플·망고 등 열대과일이 주는 신비함,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검정 머리카락과 까맣고 착한 눈망울을 가진 필리핀 남자아이가 굳게 입을 다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인공 이름은 본본. 태어나기도 전에 아빠가 먼 나라로 돈을 벌러 가는 바람에 엄마와 단둘이 필리핀에서 산다. 본본이 기다리는 반가운 손님은 아빠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엄마와 함께 나타난 손님은 한국에서 온 작고 못생긴 여자아이다. 이름은 김수진. 수진의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필리핀인이다. 먹고살기 힘든 수진의 부모는 수진을 필리핀 이모에게 맡겼고, 보따리 장사를 하는 이모는 지인인 본본의 엄마에게 맡겼다. 본본은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수진이가 밉다. 보기 싫은 손님을 내쫓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소금을 뿌려보지만 소용없다. 

본본은 깜짝 놀랐어요. 

“너 내 말 알아들어?” 

“…조금, 아주 조오금.” 

“그런데 왜 이상한 말만 했어?” 

“무서워서…아빠가…다시 데려가지…않을까봐.” 

“니네 아빤 어딨는데?” 

“서울. 돈 많이 벌면 다시 데려간다고 나랑 손가락 걸었어. 근데 필리핀 이모도…돈 벌러 갔어. 다시 안 와.” 

수진이 눈에 눈물이 고여요. 

  
   낯선 한국 아이가 못마땅했던 본본은 수진도 자기와 같다고 여기며 결국 귀한 손님으로 맞아들인다. 살기 어렵다고 수진을 필리핀으로 보내야 하는 한국 사회와 수진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필리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고 있는 골목길의 다문화 엄마들처럼 머잖아 다문화 가족은 낯선 손님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동등하게 살아가는 반가운 손님이 될 것이다. 다문화를 다룬 동화책은 많다. 아동문학에서 단골메뉴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다문화 동화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다문화 가족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역으로 갔다는 점이 신선하다. 낯선 필리핀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의 어려움을 풀어냈기에 함께 공감하며 읽어볼 만하다. 


(백은하 |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