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어른도 읽는 어린이책

끔찍한 것을 보았어요(마거릿 홈스 글 | 미래 M&B)

아기새의작은꿈 2018. 11. 17. 17:46

[어른도 읽는 어린이책]“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세요


▲끔찍한 것을 보았어요(마거릿 홈스 글 | 미래 M&B)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파업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난 일이 있다. 끔찍한 폭력진압을 직접 본 아이들은 상당히 불안해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폭력이나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을 ‘제2의 피해자’라고 하듯 아이들은 이미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구름, 별, 나무 대신 경찰특공대와 헬기, 총과 탱크 등을 그렸다. 놀 때도 투쟁가를 불렀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가정, 경찰들의 진압, 게다가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였다. 어른인 나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끔찍한 것을 보았어요>의 주인공 담담이는 마치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담담이는 아주 ‘끔찍한 일’을 보고 겁이 났다. 작가는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무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불안하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지내지만, 마음속 뭔가 담담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벗어나기 위해 더 빨리 달리고 더 크게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소용없다. 이상한 일들만 일어난다. 입맛도 없고 배와 머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잠도 오지 않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담담이를 화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담담이는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담담이는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담담이의 마음속에 심한 분노, 불안, 죄책감, 복수심 같은 감정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화가 나서 애꿎은 바깥에 에너지를 발산하고 만다. 이른바 ‘말썽’을 부리면서 심리적 외상을 표출하며 해소한다. 끔찍한 일을 잊어버리려 애쓰고 자신의 감정도 무시하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담담이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단풍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는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결국 사랑이다.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선생님은 담담이가 편안하게 자신의 기분을 얘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결국 떨고 있는 담담이에게 “아니야. 그 일은 네 잘못이 아니란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에 담담이는 커다란 위안을 얻게 됐다. 이 책은 아이에게 끔찍한 일을 겪거나 보았을 때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지,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해야 할지 알려준다.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해고자 아이들의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할 문제가 아니다. 악몽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렵겠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의 병이 나아지도록 사회에서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가슴에 꽁꽁 담아두면 병만 깊어질 뿐, 곪은 아이들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에게 상처 받은 아이들의 마음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바란다. 

(백은하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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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011915515&code=900308&s_code=ac164#csidxde5b0fcbb96c71780702270a765e194